17살 소녀가 스위스에서 일으킨 파란, 꽤 인상적이었다. 지난 2월 제54회 로잔발레콩쿠르 결선에서 염다연이 2위와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결선에 오른 21명 중 2위. 게다가 관객들이 직접 고른 관객상까지. 두 가지를 동시에 받은 건 기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발레 DNA, 부모에게 물려받다
염다연의 아버지 염지훈은 1990년대 한국 발레계를 대표하던 발레리노다. 뉴질랜드 왕립발레단, 미국 메릴랜드 주립발레단,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을 거친 주역 무용수. 어머니 하라 사오리도 발레를 했다. 두 사람 다 무대에 선 사람이니, 염다연이 발레를 시작한 건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발레 집안 딸이 잘 자란 것 정도로 보면 오산이다. 염다연은 2023년부터 한국무용교사협회 전국무용콩쿠르 대상,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 금상,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은상을 연달아 받았다. 중학생 때 이미 발레 영재로 분류돼 정몽구 재단 후원을 받았고, 현재는 미국 유타주의 발레웨스트 스튜디오에서 훈련 중이다. 타고난 것 위에 쌓아올린 결과다.

로잔콩쿠르가 어떤 대회인지
로잔발레콩쿠르는 1973년 스위스 로잔에서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청소년 발레 경연이다. 15~18세 사이 무용수만 참가할 수 있고, 매년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이 지원해 최종 결선에는 20명 안팎만 오른다. 여기서 입상하면 세계 유명 발레단이나 학교에서 장학금 제안이 들어온다. 실비 기옘, 탬버 러글리-미첼 같은 전설적인 무용수들도 이 대회 출신이다.
2026년 대회에서 한국은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결선에 오른 한국 무용수 6명이 전원 본상을 받았다. 염다연(2위)을 비롯해 신아라(7위), 김태은(10위), 방수혁(11위), 손민균(12위), 전지율(14위). 한국 발레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1위는 미국의 윌리엄 가입스(18)가 가져갔고, 염다연은 그 바로 아래 자리에 올랐다.
관객상이 더 의미 있는 이유
심사위원 점수와 관객 투표는 다른 영역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해도 관객 마음을 못 건드리는 무용수가 있고, 점수는 평범해도 무대에서 뭔가 다른 기운을 내뿜는 무용수가 있다. 염다연은 둘 다 가져갔다.
"파이널에 올라온 것만 해도 꿈만 같은데 상까지 타게 돼 믿기지 않는다"는 수상 소감이 17살답다. 긴장을 안 했을 리 없고, 결과를 확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관객을 움직였다는 게 포인트다. 발레는 결국 보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남겨야 하는 예술인데, 그 조건을 국제 무대에서 10대에 통과한 거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