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팬이라면 한 번쯤 이 이름에 멈춰 선 적이 있을 거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Svetlana Zakharova). 167cm의 긴 다리, 완벽한 발등, 흠잡을 곳 없는 고전 발레 테크닉.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이자 라 스칼라의 에투알로, 지금까지도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발레리나"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자하로바를 처음 봤을 때 ‘이건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우크라이나 소녀에서 볼쇼이 프리마까지
1979년 우크라이나 루츠크에서 태어난 자하로바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저명한 교사 올가 모이세예바가 직접 눈에 띄어 바가노바 아카데미로 이끌었고, 1996년 17세의 나이에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다. 보통 신입단원이 솔리스트 역할을 받는 데 수 년이 걸리는데, 자하로바는 입단 직후부터 주요 배역을 꿰찼다.
2000년엔 파리 무대에 서게 되는데,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댄서가 파리에서 공연한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리고 2003년, 그는 마린스키를 떠나 볼쇼이 발레단으로 이적한다. 당시 발레계에서 꽤 화제가 된 결정이었다. 마린스키와 볼쇼이는 러시아 발레의 양대 산맥이라 단원들이 이적하는 경우가 드물었거든.
볼쇼이 입단 후 자하로바의 커리어는 가파르게 올라갔다. 2007년 러시아 국가상을 받았고, 2006년엔 대통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이탈리아 라 스칼라에서는 에투알 칭호를 받았는데, 이건 라 스칼라가 외국 댄서에게 주는 매우 드문 영예다.
자하로바의 몸, 그리고 테크닉
발레계에서 자하로바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게 그의 신체 조건이다. 167cm의 키에 긴 팔다리, 자연스럽게 높은 발등, 완벽한 턴아웃. 바가노바 스타일 훈련의 교과서 같은 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단순히 몸이 좋다는 게 자하로바의 전부가 아니다. 그의 진짜 강점은 그 몸으로 음악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같은 백조의 호수 오데트를 춰도 자하로바는 팔의 느린 곡선 하나, 고개를 돌리는 타이밍 하나하나가 다르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데다 음악성까지 있으니, 비평가들이 입을 다물 수가 없는 거다.
레퍼토리도 넓다. 지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은 고전 레퍼토리는 기본이고, 컨템퍼러리 작품들도 소화한다. 라 스칼라에서 로베르토 볼레와 함께 공연했을 때는 두 사람의 피지컬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로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자하로바를 한 번도 못 봤다면
자하로바의 공연을 어디서 볼 수 있냐고? 볼쇼이 발레단이 정기적으로 공연 영상을 디지털로 공개하고 있고, 유튜브에서도 여러 하이라이트 클립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볼쇼이의 백조의 호수 전막 영상에서 자하로바의 32개 푸에테 연속 장면은 발레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입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현재 자하로바는 모스크바 국립 안무 아카데미의 학장을 맡으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프리마로서 무대에 오르는 동시에 다음 세대 발레리나들을 키우는 것. 다음번 로잔 콩쿨이나 볼쇼이 공연에서 자하로바의 제자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
발레 입문자라면 자하로바의 공연을 먼저 보는 걸 추천한다. 기준이 너무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게 문제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