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조금 좋아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 있다. ‘에투알(étoile).’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뜻인데,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는 최고 등급의 무용수를 이렇게 부른다. 박세은이 2021년 아시아 무용수 최초로 이 자리에 오르면서 한국에서도 그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에투알이 어떻게 뽑히는지, 그 아래 등급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순히 "실력이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하고 드라마틱하다.
350년 역사의 발레단, 5단계 계급 구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1669년 루이 14세 치세에 설립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이고, 발레 용어 대부분이 프랑스어인 것도 이 발레단의 역사적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이 발레단의 단원 등급은 5단계로 나뉜다.
- 카드리유(Quadrille): 군무진. 약 54명으로 가장 인원이 많다.
- 코리페(Coryphée): 군무 리더. 약 30명.
- 쉬제(Sujet): 솔리스트. 약 41명. 소규모 군무나 간간이 주역 기회도 온다.
- 프리미에 당쇠즈/당쇠르(Première danseuse/Premier danseur): 제1무용수. 약 13명. 주역 무용수로 인정받는 위치.
- 에투알(Étoile): 수석무용수. 약 16명. 오직 주역만 맡는다.
카드리유부터 프리미에 당쇠즈까지는 매년 승급 시험이 있다. 시험을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고, 시간이 지난다고 자동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세계 주요 발레단 중 이런 방식의 연례 승급 시험을 유지하는 곳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거의 유일하다.

에투알은 시험이 아니라 지명으로 탄생한다
다른 등급과 달리 에투알은 시험으로 오를 수 없다. 결원이 생겼을 때, 예술감독이 극장과 상의해 지명하는 방식이다. 그것도 보통 중요한 공연이 끝난 직후, 무대 위에서 예고 없이 발표한다.
커튼콜이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는 그 순간에 "오늘부터 당신은 에투알입니다"라는 선언이 나오는 거다. 준비한 사람도 없고, 예정된 날짜도 없다. 무용수 본인도 그날 공연장에서 처음 알게 된다.
그러니 프리미에 당쇠즈가 된 이후로는 공연 하나하나가 다 기회이자 긴장이다. 실력은 기본이고, 자리가 비어 있어야 하고,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예술감독의 취향과도 맞아야 한다. 박세은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한 지 약 13년 만에 에투알 지명을 받았는데, 그 긴 기다림 자체가 이 발레단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보여준다.
단원 전체 150여 명 중 에투알은 16명 내외. 전체의 10% 남짓이다.
에투알 시스템이 무용수에게 남기는 것
이 구조를 처음 접하면 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매년 시험을 봐야 하는 것도, 수석이 되는 기준이 불명확한 것도. 그런데 이 시스템을 오래 유지해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승급 시험 덕분에 군무에 묻혀 있는 단원도 매년 한 번씩은 예술감독과 선배 앞에서 솔로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 자동 승급이 없기 때문에 중간 단계에서 오래 머물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면 계속 갈고닦아야 한다.
그리고 에투알 지명의 드라마틱한 방식은, 단순한 통보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처럼 작동한다. 무대 위에서 동료들과 관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별"이 되는 그 순간은, 평생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누레예프가 1983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예술감독이 되면서 이 공개 지명 방식을 정착시켰다고 한다. 그전에는 지금처럼 극적인 순간이 아니었다.
발레를 오래 사랑한 사람이든,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이든 — 파리 오페라 발레단 공연을 볼 때 저 무용수가 어느 등급인지 생각하면서 보면 무대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