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전설 3인, 무대를 바꾼 남자들

발레를 처음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발레리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발레리노를 제대로 알게 되는 순간 발레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여자 무용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관중을 압도하는 남자 댄서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발레의 역사 자체를 바꿔버린 세 사람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루돌프 누레예프 — 무대가 좁았던 남자

1938년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태어났다는 것부터 이미 범상치 않다. 루돌프 누레예프는 소련 마린스키 발레단의 간판 스타였는데, 1961년 파리 투어 중 KGB의 감시망을 뚫고 서방으로 망명했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직전에 탈출한 거라 당시 서방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그가 런던 로열 발레단에서 마고 폰테인과 파트너십을 쌓은 건 발레 역사상 가장 유명한 듀오 중 하나로 꼽힌다. 폰테인이 42세, 누레예프가 24세였는데 둘의 호흡은 나이 차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누레예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안무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러시아 고전 발레를 서유럽식으로 재해석했다. 발레리노가 단순히 발레리나를 들어올리는 역할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뒤집은 사람이다. 그의 점프와 회전은 당시 기준으로 남성 발레의 한계를 다시 그었다.

무대 위에서 그랑 주테를 선보이는 남성 발레리노의 모습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 완벽함을 향해 탈출한 천재

바리시니코프는 소련 시절부터 이미 "가장 완벽한 댄서"라는 말을 들었다. 스무 살 때 뉴욕 타임스에서 그 표현을 썼다. 1974년 캐나다 투어 중 망명했고, 이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와 뉴욕 시티 발레에서 활동하며 미국 발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의 공중 체공 시간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보면 중력을 조금씩 무시하는 느낌이다. 기술적 완성도가 워낙 높다 보니 다른 댄서들이 그의 영상을 교재처럼 돌려봤다고 한다. 발레 바깥에서도 영화 ‘백야(White Nights, 1985)’에 출연해 탭댄서 그레고리 하인스와 함께한 장면이 지금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요가와 다양한 무브먼트 아트에도 빠져들면서 끊임없이 몸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그의 리프트와 턴 영상 한번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발레가 왜 예술인지 바로 와닿는다.

로베르토 볼레 — 조각상이 무대에서 걷는다면

이탈리아 출신인 로베르토 볼레는 190cm 키에 조각 같은 외모로 ‘현재 현역’ 발레리노 중 가장 유명한 얼굴이다. 스칼라 좌 발레단 에투알(최고등급 무용수)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고, ABT에서도 프린시펄로 무대에 선다.

누레예프나 바리시니코프가 기술과 에너지로 관중을 압도하는 타입이라면, 볼레는 선(線)과 표현력으로 승부한다. 팔을 펼쳤을 때의 라인, 아라베스크 자세 하나가 스틸사진처럼 완성된다. 이탈리아에서 매년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열리는 갈라 공연 ‘Roberto Bolle and Friends’는 수만 명이 광장에 몰려드는 국민 이벤트가 됐다. 현역 발레리노를 굳이 한 명 소개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그를 추천한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기준이 생긴다. 세 사람의 이름만 알아도 발레 수업이 조금 다르게 느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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