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무대는 19세기 러시아 왕궁으로 바뀐다. 발레를 막 시작했든, 오래 즐겨왔든 상관없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한 번쯤 제대로 알아두고 싶은 작품이다. 화려한 의상, 기술적으로 난도 높은 춤, 그리고 음악—세 가지가 한꺼번에 완성도 높게 맞아떨어지는 공연이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그 드문 경우에 속한다.
오로라 공주의 무대, 어떻게 만들어졌나
18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를 맡고,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썼다. 프티파는 당시 러시아 황실 발레단의 수석 안무가였는데, 그가 차이코프스키에게 악보 의뢰를 하면서 꽤 까다로운 요구 사항을 내걸었다. 어느 장면에서는 몇 박자짜리 음악이 필요한지, 분위기는 어때야 하는지까지 메모로 전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는 그 제약 안에서 오히려 더 정교한 음악을 써냈다.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1막의 ‘장미 아다지오’가 가장 유명하다. 오로라 공주가 네 명의 왕자에게 차례로 장미를 받는 장면인데, 발레리나 혼자 한쪽 다리로 오래 버티면서 파트너들과 복잡한 동작을 이어가야 해서 기술적으로도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발레 입문자라면 이 장면만 유튜브에서 찾아봐도 이 작품이 왜 클래식 발레의 정수로 꼽히는지 바로 느껴진다.
의상도 볼거리다. 오로라 공주의 클래식 튀튀는 로맨틱 스타일과 다르게 짧고 뻣뻣한 형태인데, 다리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서 발레리나의 기술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악역 카라보스 요정의 검은 의상과 대비를 이루는 구성도 시각적으로 강렬하다.

발레단마다 다른 오로라 공주
같은 작품이라도 발레단마다 해석이 다르다. 영국 로열 발레단은 프티파의 원안에 가장 충실한 버전으로 유명하다. 특히 1946년 마고 폰테인이 오로라 공주로 복귀 공연을 했을 때, 전쟁으로 지쳤던 런던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발레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볼쇼이 발레단 버전은 좀 더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쪽이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오로라 역을 맡은 영상이 남아 있는데, 그의 길고 유연한 팔과 높은 아라베스크는 이 역할의 기준점처럼 여겨진다. 국내에서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꾸준히 이 작품을 올리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솔리스트들이 오로라 역에 도전하면서 세대 교체 중이라, 국내 공연도 충분히 볼 만하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공연을 보기 전에 음악부터 들어두는 걸 권한다. 차이코프스키의 주제들이 각 장면마다 어떻게 변주되는지 귀로 익혀두면, 막상 무대를 봤을 때 흐름이 훨씬 잘 잡힌다. 1막 도입부 웅장한 테마, 요정들의 가볍고 경쾌한 변주, 잠에서 깨는 장면의 서정적인 선율—다 들어두면 공연 내내 집중도가 달라진다.
발레 용어로 이 작품 더 깊이 보기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관람할 때 몇 가지 발레 용어를 알아두면 감상의 깊이가 다르다. 앞서 언급한 ‘아다지오(Adagio)’는 느리고 서정적인 2인무나 솔로 장면을 뜻한다. 장미 아다지오가 대표적이고, 2막의 비전 씬도 꿈결 같은 아다지오로 구성돼 있다.
‘그랑 파 드 되(Grand Pas de Deux)’는 주인공 발레리나와 남성 파트너가 함께 추는 큰 2인무를 말한다. 3막 결혼식 장면의 그랑 파 드 되가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인데, 솔로 바리아시옹과 마지막 코다로 이어지는 구성이 정통 클래식 발레의 형식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간이다.
‘포인트(Pointe)’ 기술도 이 작품에서 집중해서 보면 좋다. 오로라 공주가 발끝으로 서서 빠르게 회전하거나 긴 밸런스를 유지하는 장면들이 작품 전반에 걸쳐 이어지는데, 발레를 배우는 입장에서 보면 저 포인트 슈즈 안에서 얼마나 많은 근력이 작동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무대에서는 가볍고 우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년간의 훈련이 쌓여야 가능한 기술들이다. 발레를 취미로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바 연습에 임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