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발레단: 러시아 발레의 성지

발레를 좋아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이름과 마주치게 된다. 마린스키 발레단. 단순히 "유명한 발레단" 정도가 아니라, 발레라는 예술 자체가 지금의 형태로 굳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이 모두 이 무대에서 초연됐다. 3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발레단에 대해 알아두면, 발레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발레의 역사

마린스키 발레단의 뿌리는 17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황실이 프랑스 무용교사 장-바티스트 랑데를 초청해 발레학교를 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유럽에서 배워온 형식을 그대로 따랐지만, 19세기 후반 마리우스 프티파라는 안무가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프티파는 40년 넘게 이 발레단의 수석 안무가로 활동하며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돈키호테》 등 오늘날까지 공연되는 고전 발레의 뼈대를 만들어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던 극장 이름은 임페리얼 발레였는데, 혁명 이후 소련 시대를 거치며 키로프 발레로 불리다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마린스키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그래서 나이 드신 발레 선생님들이 가끔 "키로프"라고 부르는 걸 들을 수 있는데, 같은 곳을 말하는 거다.

마린스키 발레단 연습실에서 훈련하는 발레리나

이 무대가 배출한 전설들

마린스키를 이야기할 때 사람 이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안나 파블로바, 마틸다 크셰신스카야, 갈리나 울라노바, 나탈리야 두딘스카야. 20세기 전반을 수놓은 발레리나들이 모두 이 무대 출신이다. 남자 무용수 쪽도 마찬가지다. 루돌프 누레예프는 1961년 서방으로 망명하기 직전까지 이 무대의 주역이었고,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역시 키로프 시절 이 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무용수는 다리아 파블로벤코다. 2010년대 중반부터 주역을 맡기 시작해 지금은 마린스키의 얼굴로 자리 잡았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한국계 발레리나 김기민이 마린스키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하며, 러시아 발레단 역사상 동양인 최초 주역 자리에 오른 인물로 자주 언급된다. 러시아 최고의 무대에서 한국인이 주역을 맡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인상적이다.

공연을 직접 보고 싶다면

마린스키 극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부에 있다. 건물 자체가 1860년에 완공된 역사적 건축물이라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압도되는 기분이 든다. 공연 정보는 마린스키 공식 홈페이지(mariinsky.ru)에서 확인할 수 있고, 시즌마다 《백조의 호수》, 《지젤》 같은 고전 레퍼토리와 현대 발레를 번갈아 올린다. 직접 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유튜브 마린스키 공식 채널에 올라온 공연 영상들이 꽤 볼 만하다. 전막 공연을 그대로 올려놓은 것도 있어서 발레를 처음 접하는 사람한테도 좋다. 발레를 취미로 배우다 보면 수업 시간에 들어보는 음악들, 동작 이름들이 전부 이 무대를 통해 굳어진 것들이다. 그 원점을 알고 나면 레슨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