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비쉬네바, 전설이 된 발레리나의 삶

발레 역사에서 "타고난 무용수"라는 표현이 딱 맞는 사람이 몇 없는데, 다이애나 비쉬네바는 그 몇 안 되는 이름 중 하나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를 거쳐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까지 정복한 이 무용수는 발레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단순히 "잘 추는" 수준을 넘어서, 무대 위에서 캐릭터가 되어버리는 그 능력 때문에.

로잔 콩쿨에서 마린스키까지

비쉬네바는 197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고, 열 살에 바가노바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소련 체제 하에서 키워진 러시아 발레 교육의 정수를 그대로 흡수한 셈인데, 바가노바 메서드는 유연성과 근력, 음악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훈련 체계라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이 태반이었다. 비쉬네바는 달랐다.

1994년, 그녀는 로잔 콩쿨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로잔 콩쿨은 전 세계 발레 영재들이 모이는 대회로, 여기서 수상한다는 건 단순한 실력 인정을 넘어 발레계 커리어의 문이 열린다는 의미다. 실제로 비쉬네바는 수상 직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했고, 1년도 안 돼 수석 무용수로 승격됐다. 일반적으로 수석에 오르는 데 수년이 걸리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속도였다.

마린스키에서 그녀는 지젤, 오데트/오딜(백조의 호수), 줄리엣 등 클래식 레퍼토리를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지젤 2막, 귀신이 된 뒤의 장면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허공에 뜬 듯한 움직임은 지금도 회자된다. 테크닉이 뛰어난 무용수는 많지만, 감정까지 올라오는 무용수는 드물다.

지젤 2막을 연기하는 발레리나, 몽환적인 숲 배경 무대

ABT와 국제 무대, 경계를 없애다

2005년부터 비쉬네바는 마린스키와 병행해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발레리나가 미국 정상급 발레단에 동시 소속되는 건 당시만 해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문화적 배경도, 훈련 스타일도 다른 두 단체를 오가며 그녀는 클래식과 네오클래식, 컨템포러리까지 아우르는 레퍼토리를 소화했다.

ABT 시절 특히 눈에 띄었던 건 존 노이마이어,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같은 동시대 안무가들과의 협업이었다. 기존의 고전 작품만 잘 추는 무용수가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협력자로 자리매김한 거다. 라트만스키가 그녀를 위해 만든 작품들은 러시아 클래식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그녀에게 딱 맞는 옷 같은 작품들이었다.

국제 무대에서도 비쉬네바의 활동 범위는 넓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스칼라 극장, 베를린 국립 오페라 발레단까지 초청받아 공연하면서 "러시아 발레리나"라는 범주를 넘어선 무용수로 자리 잡았다. 발레계에서 국적은 종종 스타일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되는데, 비쉬네바는 어느 무대에서든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각 단체의 스타일에 녹아들었다.

무대 밖 비쉬네바, 그리고 지금

비쉬네바는 무대 밖에서도 발레 생태계에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 2012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국제 발레 포럼 "콘텍스트(Context)"를 직접 기획·운영하고 있는데, 신진 안무가들에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주는 플랫폼이다. 발레 무용수가 아니라 프로듀서이자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선택한 거다.

2023년에는 로잔 콩쿨 심사위원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4년 이 무대에서 금메달을 받은 그녀가 30년 만에 다음 세대를 심사하는 자리에 선 거니, 어떤 의미에서는 발레계의 사이클이 완성된 모양이기도 하다.

퍼포머로서의 비쉬네바는 여전히 현역이다. ABT에서 은퇴했지만 특별 공연과 갈라에는 계속 등장하고, 최근에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무대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는 이유를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춤은 나한테 직업이 아니야. 그냥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야." 그 말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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