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스위스 로잔에서 발레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리는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이 막을 내렸다.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한국 발레 팬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결선에 오른 한국인 6명이 전원 입상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17살의 발레리나 염다연이 있었다.
로잔콩쿠르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로잔콩쿠르는 매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국제 청소년 발레 콩쿠르다. 참가 자격은 만 15세에서 18세까지로, 엄격하게 제한된다. 바르나, 잭슨, 모스크바 콩쿠르와 함께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히는데, 특히 이 대회는 수상자에게 왕립발레학교, 볼쇼이 발레단,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 등 세계 최정상 기관 입학 기회와 약 3,1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한다. 발레 영재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이 대회가 다른 콩쿠르와 확연히 다른 점은 심사 방식에 있다. 무대 위 공연 점수만으로 순위를 결정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5일 동안 매일 발레 클래스를 받아야 하고, 그 기간 동안의 학습 태도와 성장 가능성도 전체 점수의 50%를 차지한다. 단순히 기술이 뛰어난 댄서보다,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무용수를 뽑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무대 위 화려함 뒤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배우는지까지 보는 것이다.
한국은 1985년 강수진(현 국립발레단 단장)이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한 이후, 2007년 박세은(현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에투알), 2025년 발레리노 박윤재까지 꾸준히 스타를 배출해 왔다. 2020년대 들어서는 거의 매년 한국 학생이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K발레의 위상이 올라갔다.

염다연, 홈스쿨링으로 세계 2위에 오르다
21명의 결선 진출자 중 한국인이 무려 6명이었고, 그 중 염다연이 2위와 청중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특히 청중상은 심사위원이 아닌 현장 관객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이 상까지 쓸어간다는 건 기량뿐 아니라 무대 위 존재감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뜻이다.
염다연이 주목받는 이유는 실력 외에도 또 있다. 국내 발레 영재들이 한예종 영재원을 거쳐 예중·예고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녀는 고등학교 진학 대신 홈스쿨링을 택했다. 아버지가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출신이고 어머니도 발레 전공자라 가능한 선택이었지만, 제도권 교육을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 이 수준의 결과를 낸 건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클래식 부문에서 선보인 ‘에스메랄다’ 바리에이션은 현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심사위원들도 깊이 있는 표현력과 흔들림 없는 테크닉을 극찬했다. 앞서 2024 YAGP(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에서 주니어 1위를 차지할 때도 "프로에 가까운 완성도"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문화예술 장학생으로 선발돼 지원을 받아온 것도 한몫했다.
한국 발레 6명 전원 입상, 이게 왜 대단한가
2026 로잔콩쿠르 결선에는 21개국 출신 21명이 올랐다. 그중 6명이 한국인이었고, 14명에게 주어지는 본상을 받은 한국인도 6명 전원이었다. 단일 국가 기준 최다 결선 진출에 100% 입상이라는 기록은 로잔콩쿠르 역사상 전례가 없다.
염다연(2위·청중상), 신아라(선화예고), 김태은(서울예고), 방수혁(프랑스 유학), 손민균(선화예고), 전지율(서울예고)까지 여섯 명 모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세계 유수 발레단과 학교에 입학할 기회와 3,100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받게 된다.
발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느꼈을 것이다. 발레는 기초를 쌓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 국제 무대에 서는 건 그 이후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발레가 이 자리까지 오는 데는 수십 년의 뚝심과 수많은 이름 없는 노력이 쌓였다. 이번 로잔콩쿠르의 결과는 그 모든 과정이 낳은 결실이다.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진심으로 축하할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