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처음 발레를 시작한 나이치고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남들은 다섯 살에 바를 잡을 때 그녀는 집조차 변변치 않았다. 근데 지금 그녀의 이름은 발레 역사에 새겨져 있다.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 이야기다.
평범하지 않은 시작
미스티 코플랜드는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여섯,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모텔방에서 살기도 했다. 발레 수업은 꿈도 못 꿀 환경이었다.
열세 살, 그녀의 인생을 바꾼 건 학교 치어리더 코치였다. "너 발레 해봐야 할 것 같아"라는 한마디. 동네 YMCA 발레 수업에 처음 발을 들였고, 재능은 바로 눈에 띄었다. 몇 달 만에 토슈즈를 신을 만큼 발전이 빨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발레 세계가 요구하는 몸 — 길고 가는 팔다리, 작은 가슴, 흰 피부 — 그중 어느 것도 그녀와 맞지 않았다. 열다섯 살 때 다니던 발레 학교에서 "너의 몸은 발레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그 말이 얼마나 상처였을지. 그런데도 그녀는 그만두지 않았다.

ABT에 발을 들이다
2001년, 열아홉 살의 미스티는 미국을 대표하는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ABT)에 입단했다. 전 세계 정상급 무용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몸이 달랐다. 단원들 사이에서 그녀는 언제나 눈에 띄었다 —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2012년, ABT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성이 솔리스트 자리에 올랐다. 미스티 코플랜드였다. 그리고 2015년, 또 한 번의 역사. ABT가 75년 역사 동안 처음으로 흑인 수석 무용수(프린시펄 댄서)를 임명했다. 미스티 코플랜드, 서른두 살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소식을 1면에 실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녀를 백악관에 초청했다.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의 광고에 등장한 그녀의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800만을 넘겼다. 발레는 그렇게 처음으로 TV 뉴스에서 다뤄졌다.
그녀가 바꾼 것들
미스티 코플랜드의 등장이 발레계에 준 충격은 단순한 ‘최초 흑인 수석 무용수’가 아니었다. 그녀는 발레가 오래 유지해온 기준 자체를 흔들었다.
"몸이 맞지 않으면 발레를 할 수 없다"는 공식. 그녀가 부셨다. 근육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몸, 곡선이 있는 체형, 흑인 여성의 몸이 발레 무대에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수백만 명에게 보여줬다.
특히 발레를 늦게 시작한 여성들, 또는 자신의 몸이 발레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여성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의미가 달랐다. "나 같은 사람도 발레를 할 수 있구나."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스튜디오로 이끌었을지 모른다.
2014년에는 자서전 『Life in Motion: An Unlikely Ballerina』를 출간했다. 어린 시절의 가난, 발레계의 차별, 부상과 복귀까지 담담하게 쓴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어린이 그림책 『Firebird』도 냈다. 발레를 꿈꾸지만 무대가 멀게 느껴지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지금도 그녀는 ABT 무대에 서는 한편, 발레 교육 접근성을 높이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비싼 발레 레슨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이다. 무대에서만큼이나 무대 바깥에서도 발레를 바꾸는 중이다.
열세 살에 처음 바를 잡았던 그 아이가 이 자리까지 왔다. 발레가 요구하는 몸이 아니었고, 발레를 배울 환경도 아니었다. 그래도 됐다. 그게 미스티 코플랜드가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