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발레리나, 발이 말해주는 것들

발레를 시작하고 나서 한 번쯤 이 사진을 본 적 있을 거다. 발가락이 굳은살로 덮이고, 뼈가 휘어있고, 피부가 벗겨진 어느 발레리나의 발 사진. 처음 봤을 때는 충격적이었는데, 그게 강수진 발레리나의 발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 사진 하나로 발레를 전혀 몰랐던 사람들까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2026년 3월, 강수진이 12년간 이끌어온 국립발레단 단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소식이 나오자 발레 커뮤니티 여기저기서 그녀 이야기가 다시 쏟아졌다. 취미로 발레를 하는 나도, 이 참에 제대로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동양인이 설 자리 없던 무대에서

강수진은 1986년, 만 18세의 나이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다. 지금이야 아시아 출신 무용수들이 세계 유수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지만, 당시는 달랐다. 동양인 무용수가 유럽 발레단에서 주요 배역을 맡는 건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 안에서 그녀는 11년 만에 수석무용수 자리까지 올라갔다. 1997년 수석 승격 후 2년 뒤인 1999년에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였다.

대표작은 ‘오네긴’이다. 차이콥스키의 원작 소설 속 타티아나 역으로, 감정 표현과 기술이 동시에 요구되는 어려운 배역이다. 그녀가 무대에서 그 역할을 소화하는 영상을 찾아보면 지금 봐도 압도된다. 2016년에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역사상 최초로 단원 평가 면제 대상이 됐다. 원하는 때까지 수석무용수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발레 연습실에서 바 연습 중인 발레리나의 모습

그 발 사진이 유명해진 이유

인터넷에 떠도는 그 발 사진, 실제로 강수진의 발 상태가 알려진 건 꽤 오래전 일이다. 발가락 관절이 굳어있고, 굳은살이 겹겹이 쌓여 있고, 몇몇 발톱은 흔적만 남아 있다. 포인트 슈즈를 수천 시간씩 신으며 훈련하면 그렇게 된다.

취미 발레를 하면서 포인트 슈즈의 무서움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그 사진이 단순히 "고생했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통증 관리, 테이핑, 신발 패딩… 그 발을 그 상태로 유지하면서도 무대에서는 완벽한 발끝을 보여줬다는 게 진짜 이야기다.

독일에서는 그녀를 무형문화재로 등재했다. "캄머탠처린(궁중무용가)" 칭호도 받았다. 외국인 무용수에게 이걸 주는 건 거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이 먼저 강수진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셈이다.

이제 다음 막이 시작됐다

2014년부터 2026년까지, 강수진은 12년 동안 국립발레단을 이끌었다. 임기 내내 레퍼토리 다양화, 해외 투어, 신진 무용수 발굴에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장으로서의 그녀를 좋게 보는 시각도 있고,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퇴임 후 그녀는 교육 쪽으로 인생 3막을 열겠다고 했다. 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전한다는 방향이다. 발레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 부분이 기대된다. 그녀에게서 직접, 혹은 그녀의 영향을 받은 선생님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이야기니까.

발레를 취미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왜 이렇게 좋은 무용수들은 다 해외에 있나 싶었다. 강수진의 이야기를 더 알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세계 최고 무대에 섰던 사람이 한국 발레를 위해 돌아왔고, 그 흔적이 지금 국내 발레계 곳곳에 남아 있다.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제대로 들여다볼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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