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코플랜드, 발레계의 벽을 깬 여자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 2015년 그가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 무용수가 됐을 때, 뉴스는 전 세계로 퍼졌다. ABT 75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 이 한 문장이 왜 그렇게 큰 충격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발레를 배우는 입장에서 그의 이야기가 왜 여전히 의미 있는지 정리해봤다.

13살에 시작한 발레, 남들보다 10년 늦었다

발레를 시작하기 좋은 나이는 보통 4~6살로 알려져 있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13살에 처음 토슈즈를 신었다. 캘리포니아 샌페드로 출신으로, 싱글맘 밑에서 여섯 남매와 함께 모텔을 전전하며 자랐다. 발레 레슨비는 꿈도 못 꿀 환경이었다. 처음 발레를 접한 건 학교 근처 보이즈&걸스 클럽의 무료 수업이었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선생님은 바로 알아봤다. 유연성, 근력, 음악성 — 어떤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불과 3개월 만에 토슈즈를 신었고, 2년 만에 전국 대회에서 입상했다. 14살에는 샌프란시스코 발레 아카데미에서 전액 장학금을 제안받았다. 늦게 시작했다고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그는 몸으로 증명했다. 성인이 돼서 발레를 시작하는 우리가 "너무 늦지 않았을까" 걱정할 때, 코플랜드의 이력은 꽤 묵직한 대답이 된다.

발레 연습 중인 미스티 코플랜드

ABT에서 버텨낸 15년, 흑인 몸이라는 이유로

2001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입단했을 때부터 코플랜드는 튀었다. 피부색이 달랐고, 체형도 달랐다. 발레계는 오랫동안 마른 백인 여성의 몸을 ‘이상적’이라 여겨왔다. 그는 근육이 있었고, 곡선이 있었고, 검었다.

"넌 발레리나처럼 생기지 않았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단장들에게 "더 날씬해져라", "근육을 줄여라"는 말을 들었다. 신체에 대한 압박은 무용수라면 다들 겪는 일이지만, 코플랜드가 받은 압박에는 인종이라는 층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솔리스트로 8년, 단원으로 총 15년을 버텼다. 2015년 수석 무용수 발탁은 단지 개인의 성취가 아니었다. ABT 무대에 설 수 없다고 여겨졌던 모든 ‘비전형적인’ 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같은 해 코플랜드는 ABT 역사상 흑인 발레리나로 최초로 ‘백조의 호수’ 오데트/오딜 역을 맡았다. 클래식 발레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에서, 가장 상징적인 역할로.

은퇴 후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

코플랜드는 2024년 무대에서 내려왔다. 은퇴를 발표하면서 그는 오히려 더 바빠졌다. 책을 썼고, 다큐멘터리에 출연했고, 발레 교육의 다양성을 높이는 재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과 흑인 아이들이 발레를 접할 수 있도록 장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힘쏟고 있다.

그가 남긴 말 중 오래 남는 게 있다. "발레는 움직임이지만, 동시에 시각 예술이다. 우리는 몸으로 이야기한다." 발레가 단지 유연하고 날씬한 몸을 만드는 운동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라는 것.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우리에게도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발레 교실에서 거울을 볼 때, 자신의 몸을 경쟁 상대가 아니라 표현의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 — 코플랜드가 평생으로 가르쳐준 것이다.

발레가 좋아서 시작했다면, 그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 코플랜드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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