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공연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 있지 않나요? ‘저 사람은 대체 어떻게 저렇게 뛸 수 있지?’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무대 위 무용수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이름이 자꾸 눈에 들어왔어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0세기 발레의 기준을 새로 세운 남자라고들 하는데, 그냥 ‘유명한 발레리노’라고만 알고 있기엔 이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드라마틱합니다.
소련을 탈출한 발레리노
바리시니코프는 1948년 라트비아 리가에서 태어났어요.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레를 배우며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고, 키로프발레단(현 마린스키발레단)의 스타로 자리잡았죠. 소련에서 이미 성공한 예술가였는데 왜 망명을 택했을까요?
1974년 캐나다 투어 중 그는 서방으로 도망쳤습니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었어요. 소련의 발레가 너무 답답했던 거예요. 더 자유롭고 현대적인 발레를 하고 싶었는데, 창작의 숨통이 막혀 있었던 거죠.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가짜 흔적을 남기고 약속된 차를 타고 사라진 그 망명 과정은, 나중에 실제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1985년 영화 ‘백야(White Nights)’가 바로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에요. 한국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발레에 입문한 무용수들이 꽤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인 이오시프 브로츠키는 이런 말을 남겼어요. "바리시니코프가 소련에 남아있었다면 알코올중독자가 됐을 거야." 1970년대 소련의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렇게 무너졌다고 해요. 그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세상은 훨씬 볼품없어졌을 것 같습니다.

왜 그가 ‘기준’이 됐을까
미국에 정착한 바리시니코프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어요. 폭발적인 도약력,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라인, 그리고 정교한 회전 기술로 클래식 발레 테크닉의 척도 자체가 됐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술이 좋았던 게 아니라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냈어요. ‘저 사람은 춤추는 게 아니라 뭔가를 말하고 있다’는 느낌, 발레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 바로 아실 거예요.
그는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ABT)에서 수석 무용수로, 그리고 예술감독으로 일했어요. 조지 발란신의 뉴욕시티발레단에서도 활동했는데, 고전 발레에서 현대 발레까지 넘나드는 폭이 당시로서는 거의 전례가 없었습니다. 대개 무용수들은 한 스타일을 고수하거든요.
1990년엔 ‘화이트 오크 댄스 프로젝트’라는 실험적인 단체를 직접 설립했어요. 나이를 먹어도 무대를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발레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직접 보여주겠다는 고집이 보였죠.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 사람은 ‘잘 추는 것’보다 ‘어떻게 계속 추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발레를 대중에게 가져온 방식
바리시니코프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발레라는 예술을 극장 밖으로 꺼냈다는 점이에요. 그는 할리우드 영화에 직접 출연했고, 훗날에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도 등장했습니다. 발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이 드라마 덕분이기도 해요.
단순한 노출이 아니었어요. 그가 화면에 등장할 때는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줬거든요. 걷는 방식, 자세, 손짓 하나에서도 수십 년의 훈련이 배어나왔고, 그게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왠지 모르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거죠. 발레를 하는 몸이 어떤 건지 드라마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준 셈이에요.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요즘, 가끔 유튜브에서 바리시니코프의 옛날 공연 영상을 찾아봐요. 1970~80년대 영상인데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어요. 오히려 지금 봐도 저렇게 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발레를 배우면서 좋은 무용수의 영상을 많이 보면 실력이 느는 것 같은데, 바리시니코프 영상은 기술보다 표현에 집중하게 만들어줘서 개인적으로 자주 꺼내보는 편이에요. 여러분도 한 번 찾아보세요. 정말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