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좋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다. 마고 폰테인(Margot Fonteyn)과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 이 두 사람이 무대에서 만들어낸 화학 반응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발레계 전체가 기억하는 전설로 남아 있다.
냉전의 틈에서 시작된 만남
1961년 파리, 키로프 발레단 소속이었던 누레예프는 공항에서 KGB 요원들을 피해 도망쳐 서방에 망명한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23세. 그야말로 영화 같은 탈출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런던, 당시 이미 42세였던 폰테인이 누레예프를 로열 발레단 갈라 무대에 초청하면서 둘의 만남이 시작됐다.
처음에 폰테인은 이 젊은 망명자와 파트너를 맺는 것에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사실상 은퇴를 고려하던 시점이었다. 근 20년 경력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이제 막 서방 무대에 발을 내딛은 청년과 어떻게 어울리겠느냐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1962년 2월,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함께 선 첫 공연 《지젤》은 그 모든 우려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커튼콜이 89번. 공연장은 30분 동안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19살이었다. 그 차이가 무대 위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누레예프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폰테인의 절제된 우아함이 맞닿는 순간, 관객들은 뭔가 유일무이한 것을 목격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무대 위에서 만들어진 화학 반응
폰테인과 누레예프의 파트너십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두 사람이 실력이 좋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다른 무언가를 끌어냈다.
누레예프는 폰테인 덕분에 음악적 섬세함을 배웠다. 폰테인은 누레예프를 통해 다시 한번 무대 위의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되찾았다. 로열 발레단 예술감독이었던 니네트 드 발루아(Ninette de Valois)는 "마고는 루돌프가 없었다면 그 나이에 은퇴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둘은 1963년에 안무가 프레드릭 애쉬튼(Frederick Ashton)이 오로지 이들을 위해 만든 《마르게리트와 아르망(Marguerite and Armand)》을 초연한다. 뒤마의 소설 『춘희』를 원작으로 한 이 발레는,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무용수는 쓰지 못하도록 저작권 자체를 두 사람에게 헌정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폰테인과 누레예프 그 자체였다.
당시 공연 영상이 지금도 유튜브에 남아 있다. 시간이 흘렀어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 장면들이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 폰테인이 숨을 거두는 순간 누레예프가 그녀를 붙잡는 그 몸짓은 연기인지 실제 감정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무대 밖의 이야기, 그리고 남은 것
두 사람 사이가 어땠느냐는 질문은 지금도 발레 팬들 사이에서 반복된다. 분명한 건, 둘 다 공식적으로는 그 이상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폰테인에게는 파나마 대사였던 남편 로베르토 아리아스(Roberto Arias)가 있었고, 누레예프는 그의 삶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폰테인의 남편이 암살 시도로 전신 마비가 된 후, 폰테인은 공연을 줄이고 파나마 농장에서 남편을 간호하는 삶을 선택했다. 누레예프는 그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농장을 방문했고, 폰테인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연에 복귀해야 할 때 항상 그 옆에 있었다.
1991년 폰테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누레예프는 장례식에서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그리고 1993년, 누레예프도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둘 다 가고 없지만, 오늘도 《마르게리트와 아르망》의 영상이 재생될 때마다 그 무대는 살아 있다.
발레를 보다가 문득 ‘이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그 감정 자체가 이미 그들이 남긴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