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발레리나, 피와 땀으로 쓴 전설

발레를 조금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사진이 있다. 발가락뼈가 휘고, 굳은살이 겹겹이 쌓인 한 발레리나의 발.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저게 사람 발이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 발의 주인이 강수진이다.

강수진은 1967년생으로,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 중 한 명이다.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1981년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1985년,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이후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해 무려 2015년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그곳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토슈즈 안에 생고기를 넣고 무대에 서다

발가락뼈가 골절됐다. 근데 그냥 진통제를 먹고 붕대를 감아 무대에 올랐다. 토슈즈 안에 생고기를 넣고 발의 충격을 줄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믿기 어렵지만 실화다.

취미발레를 하는 입장에서 이 이야기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건, 우리도 토슈즈를 신고 나면 발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이다. 첫 토슈즈를 피팅하고 30분만 서 있어도 발톱이 검어지고, 발가락 살이 까지는 경험. 근데 강수진은 그걸 평생 했다.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에서.

그녀가 슈투트가르트에서 쌓은 경력은 화려하다. 1994년 솔리스트, 1997년 수석무용수 승급. 2007년에는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강수진 이전까지 이 상을 받은 동양인 발레리나는 없었다.

무대 위에서 아라베스크 포즈를 취한 발레리나

완벽하지 않은 신체 조건, 그래서 더 위대한

발레리나에게 ‘고(arch)’는 중요한 신체 조건이다. 발등이 높이 올라가는 정도를 말하는 건데, 강수진은 이 조건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러시아 출신 발레리나들처럼 발등이 예쁘게 아치를 그리는 타입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데도 세계 최고가 됐다. 방법은 하나였다. 연습. 하루 10시간 이상의 훈련을 수십 년간 유지했고, 공연이 없는 날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가 저 발 사진이다.

취미로 발레를 하다 보면 가끔 "나는 몸이 안 맞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든다. 발이 안 유연하다거나, 발등이 낮다거나, 몸이 굳었다거나. 강수진의 커리어는 그 생각에 조용히 반박한다. 물론 취미 수준에서 그 정도 노력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타고난 게 전부는 아니다"라는 건 분명하게 보여준다.

무대를 떠나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2016년, 강수진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현장에서 30년 가까이 활동한 현역 무용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취임 후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와 해외 교류는 눈에 띄게 늘었다. 직접 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교육과 운영에 녹여냈다는 평가가 많다. 동시에 그녀는 인터뷰에서 늘 강조했다. 발레는 결국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예술이라고.

취미발레를 하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강수진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레슨장 거울 앞에 서는 기분이 조금 달라진다. 꼭 뭔가 대단한 걸 이루지 않더라도, 발레를 계속 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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